제4장. 한·일 독도문제 칼럼. 

 


 독도와 한일 관계.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한국과 국교 정상화를 이루고 경제적인 교류 및 우방으로 잘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경제 부국이 되더니 역사를 왜곡하고 국토[독도] 분쟁을 일으켜 한국 및 중국에게도
과거로 되돌아 갈려는 이른바 사무라이 예찬 세력[극우세력]들이 득세 해 지고 있다.

오랜 옛날부터 현제까지 독도가 한국 영토로 관할 유지 되어온 사실들을
이번에 분명하게 알리고 우리의 국토수호 의지와 결의를 일본에 보여 주어야 한다.

일본이 더 이상 넘보지 못하도록 원인부터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실증 자료들을 수집 연구 검토하여 일본의 야욕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

국제수로기구[IHO]에 한국식 해저 지명을 분명하게 등록해야 한다!
우리 영토 내에서 우리식 해저 지명으로 등록한다는데 일본이 등록을 못하게 할 이유가 없다.

이것은 월권행위이며 분명한 내정 간섭이다.

우리 영토인 독도를 기점으로 EEZ를 재조정해야 한다.
독도와 오끼섬의 중간을 경계로 확정해야 한다. 어업협정도 필요시는 재조정해야 한다.

독도는 바위가 아닌 분명한 섬이다.
독도는 흙이 있어 식물이 살고 시설과 주민이 살고 있는 섬이다 정부는 섬으로 등록해야 한다.

섬은 12해리의 영해와 24해리의 접속수역과 200해리의 배타적 경제수역의 적용을 받는다.

그러나 바위섬은 12해리의 영해만 인정받도록 UN해양법에 규정되어 있다.

독도와 오끼섬과의 거리는 160해리이며 울륭도와 독도간의 거리는 90해리이다.
독도로부터 중간인 80해리 지점을 한일 간의 경계로 확정해야한다.

최악의 경우 섬이 아닌 바위로 삼아도 독도에서 12해리까지가 우리의 영해이다.
울릉도와 오끼섬 중간 지점을 잡아도 독도에서 35해리 밖이 경계구역이다.

일본은 독도와 울릉도 중간지점 45해리 지점을 경계로 삼자고 주장 해 왔다.
이는 독도가 자기들의 영토라는 주장에서다. 어불성설이다, 실효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맞지 않다.

일본이 계속적으로 주장한다면 이는 침략적인 발상이다.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야욕을 사전에 대비하고 우리의 영토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일본은 우리의 승낙도 없이
몰래 우리 구역을 탐사하고 일본식 지명으로 등록한 것은 분명한 침략 행위이다.

이들은 자본과 기술을 앞세워
한국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우리정부를 흔들어 독도문제 야욕을 일삼아 왔다.

일본은 제국주의로 과거 무력으로 대륙을 점령하였었고
제국이 패망한 후 자본주의로 세계를 점령 하려 했으나 미국, 중국에 밀려나고 있다.

모방의 천재인 일본은 경제 동물처럼 세계경제를 잠식 해 왔으며,
한국과도 한 번도 무역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고 경제 예속이 되어있는 상태다.

기술과 자본의 대결만이 일본을 누를 수 있다!
첨단소재 부품의 일본 의존도를 벗어나야 무역 역조를 해결할 수 있다.

이들은 육지의 부존자원의 고갈로
해저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해저 권역을 넓히려고 온갖 수단을 다 하고 있다.

한국에 독도문제나 중국의 동중국해 센카쿠 (釣魚島, 중국명: 댜오위다오) 제도 문제도

이 같은 해저 자원과 대륙의 전략적인 위치를 확보하려는 야욕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눈을 뜬 한국과 중국이 바짝 뒤를 따라 경쟁자로써 견제 대상이 된 원인도 있다.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제국주의 섬나라 근성이 영토 확장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정부도 과거 친일파 정리라는 문제를 재론하여,
반일 감정을 과거로 회귀하고 일본의 과거 감정에 불을 붙인 원인도 있다.

정부는 주변국 열강들과 감정적인 외교로 고립 되어서는 안 되며
주변 열강 국가들과 슬기롭게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주요한 시점임을 강조 해 둔다.

정부는 독도 문제를 고도의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다행이도 이번 일본의 탐사문제가 우선이나마 해결되었음을 환영한다.
충돌 시 막대한 손실은 한일 외교 문제가 가장 큰 문제로 부상 할 것이다.

절대로 힘으로 밀릴 수는 없다.
독도 및 독도주변 해상을 침략하면 단호하게 막아내야만 한다.
독도는 일본의 침략 근성에 한국의 자존심이 걸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박 제조 능력은 세계 제1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반도는 바다에 접하는 부분이 많아 무한한 해저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해저 자원 개발과 능력을 보다 확충하고 해상 방위 능력을 일본 북한보다 앞서가야 한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문제를 제기 할수록 한국은 민족 단합이라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북한과 같은 반일 감정에 공감대를 더욱 형성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변화하지 않는 상태에서
남한과 북한이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면 민주 우방에 이로울 것은 하나도 없다.

또는 과거 일본에 피해국인 중국과도
한국은 같은 피해국이라는 공감대가 더욱 밀착하게 할 것이다.

-일본은 각성하라!

한국은 지금까지도 남북을 대치하고 있으며 천만 이산가족의 한이 서려있다.
일본 제국이 36년간의 침략으로 한반도에 남북분단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동아 전쟁 패망직후 일본의 열도 3개의 섬이 북 · 중 · 남으로 나누었어야 했는데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세기적인 이념 전쟁까지 치렀으며
한국전쟁[6.25]을 이용하여 일본은 경제적인 부국의 동기가 되었었다.

지금까지도 경제적으로
일본의 첨단 소재를 조립하여 수출 대행만 하고 한일 간의 무역 역조는 매년 늘어만 가고 있다.
2006년도에도 대일 무역적자가 156억 달러이며 반대로 미국은 무역 흑자가 100억 달러이다.

역사 이래 단 한번도
한국을 도와준 사실은 전무하며
계속 침략만 당하고 고도의 술수로 이용만을 일삼는 섬나라 근성의 민족이다.

지금까지도 독도를 침탈하려 하는 저의가 철천지원수로 계속 이어 가겠다는 것인가?
한민족 칠천만 이 단 한사람이 남을지라도 더 이상 일본에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은 더 이상 한국국민의 아픈 과거의 상처를 손상시키지 말기 바라며
동맹인 미국도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하여 보다 관심 있게 보아주길 바란다.



2006.4.20        

평화통일 문제 연구소. 대표 박 덕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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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한국을 계속 괴롭히고 있다.  [2005년 3월 1일.] 

 

현재까지도 섬나라 침략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독도분쟁 및 경제적인 침략을 계속하고 있다.


1200년 전부터 지키고 확인된 우리 영토인 독도를

그들의 고도의 계획된 술수로 침략주의 근성을 더 이상 방치 할 수 없다.


영토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이나 무 대응이 그들의 야욕을 불러들이고 있다.


세계 제2차 대전의 피해당사국들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막아야하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막아야 한다.


1. 일본이 한국에 지은 죄목들을 기록한다.


➀. 7년 동안의 임진왜란.

➁. 36년간 일제침략기(일제강점기)

➂. 태평양 전쟁으로 징용. 징집. 강간납치. 약탈. 을 자행하였다.

➃. 남북분단의 근원도 일제 강점 시 태평양 전쟁 패배로 이어진 비극이었다.

➄. 6.25한국전쟁으로 재무장하고 경제도 회생하였다.

➅. 현제까지도 핵심부품소재, 로얄티 수출해서 만년 무역적자가 산더미처럼 불어나고 있다.

➆. 남북 간에 분쟁이 심화되거나 경재혼란[IMF]을 틈타 일본은 독도침략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 일본 자성해야 할 사건들.


1]. 임진왜란


1592년 조선 침략을 도발한 사건으로.

이 침략전쟁은 무려 7년 동안 전개되었으며 평화로운 조선강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었다.


명나라는 조선의 거듭되는 지원 요청에 군대를 파견하였다.

명나라는 일본군이 압록강 이남을 차지하면 곧바로 명나라 국경을 넘볼 것이라는

위기의식으로 지원병을 보낸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조선 조정에 “명나라를 정벌할 터이니 길을 빌려 달라(假道)”고 요청하기도 하였다.


사상 첫 외국군 주둔사례로 전쟁은 승패 없이 싱겁게 끝났다.

종전에 따라 치르는 항복식이나 강화식도 없이 그저 두 나라 군사들이 철수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 그러나 가장 큰 피해 당사자는 조선 민중이었다.


조·일전쟁 중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군인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현지처를 허용하는 군법을 시행하였다.

일본군들은 마을에 들면 처녀나 부인을 가리지 않고 조선 여자를 납치하여 데리고 갔다.


여성들은 완강하게 항거하다가 칼에 팔이 잘리거나 죽음을 당하기도 하였다.

또 절벽에 투신하는 일들도 벌어졌고, 강간을 당한 뒤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일들이 부지기수였다.


이들 여성이 임신을 하면 “왜놈의 씨를 뱄다”면서 손가락질을 받았다.

더러 깊은 산골로 들어가 출산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거의 스스로 목숨을 끊기 일쑤였다.


화의 교섭에 따라 1,500여명이 조선의 여성들이 일본에서 귀환하였다.

이런 아내를 둔 벼슬아치와 사람들은 이혼을 허가해달라고 빗발치게 요청하였다.

선조는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며 허락해 주지 않았다.


2]. 36년간 일제침략기(일제강점기)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36년간에 걸쳐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했다.


4000년의 역사를 송두리째 앗아간 지난 36년!

창씨개명을 당하고, 남자들은 징용에, 여자들은 위안부에 끌려가

수치와 압박을 받았던 처참했던 지난 강점시대...

실로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도록 압박을 받았던 36년 이였다!


전체 민족적 저항운동으로서의 3·1운동은.

[ http://www.pyung.co.kr/31dokreb.htm 독립선언서 음성녹음]

독립선언서 내용을 참고하시면 당시 우리민족의 한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제국주의 일본 침략에 항거하고자

민족의 독립운동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태극기만을 들고 만세운동을 전개하여

일본의 침략을 세계만방에 고하는 우리민족의 뿌리를 되찾는 영혼의 항거였다.


일본은 이와 같은 민족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헌병경찰 제도를 실시하여 항일독립운동 투사들을 학살·투옥하고,

일체의 결사(結社)와 언론활동을 금지하였다. 교육정책에 있어서도,

우민정책을 실시하여 민족의식의 성장을 억누르고, 고도의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박탈하였다.


이러한 무단정치는 한국의 고유문화를 말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토지 · 광산 · 철도 · 금융 등 모든 분야의 이권을 독점 경영하였으며,

한민족의 경제발전마저 극도로 제한하였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해외로 망명하여,

무력투쟁으로 혹은 외교활동을 통하여 조국의 국권회복을 위하여 선두에 섰었다.


한편 국내의 대다수 농민들은 소작농(小作農) · 화전민(火田民) 등으로 전락하였으며,

생활난으로 인하여 만주(滿洲) 등지로 유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3]. 태평양 전쟁


'대동아'란,

즉 동아시아에 동남아시아를 더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1940년 7월 일본이 국책요강으로 '대동아 신질서 건설'이라는 것을 내세우면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만주를 침략하기 직전인 1931년에 일본·조선·만주·중국·몽골의 다섯 민족이 서로 화합해야 한다는,

일본과 만주가 블록을 결성해야 한다는 '일만(日滿) 블록' 같은 슬로건을 선전하고 있었다.


일만[日滿] 블록의 슬로건은

만주를 점령한 후인 1933년에는 중국을 합한 '일만지(日滿支) 블록'으로 발전하였으며,

1938년 중일전쟁이 일어난 후에는 일본·만주국·중국이 주도하여 '동아 신질서'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었다.


1940년 8월 1일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 일본 외상은 담화를 발표해 처음으로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했다.


그 요지는 아시아 민족이 서양 세력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려면

일본을 중심으로 대동아공영권을 결성하여 아시아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대동아공영권의 결성이란 일본·중국·만주를 중축(中軸)으로 하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타이·말레이시아·보르네오·네덜란드령 동인도·미얀마·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인도를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의 정치적·경제적인 공존·공영을 도모하는 블록화 계획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대동아공영권에서 일본이 한 일은 피점령국의 주요 자원과 노동력을 수탈하는 것이었으며,

이 목적을 위하여 식민지와 점령지의 독립운동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일본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함으로써 대동아 공영권은 허황된 슬로건으로 끝났으며

동시에 한반도에도 해방의 기쁨을 맞이하였다.


-그들이 지은 죄는 인간으로써 상상 할 수 없는 만행 이였다.


1] 일본제국이 강제 성 노예로 (소위 "위안부") 삼았던 약 200,000명의 여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 배상해야 한다.


2] 세균전으로 피해를 입힌 약 500,000명의 동남아 민간인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    

배상해야 한다.


3] 일본제국 육군 731부대에 의해 생체해부 당해 죽임을 당한 수천 명의 피해자들    

에게 공식적으로 사과 배상해야 한다.


4] 일본 전범 산업들을 위해 노임 없이 강제징집 노역을 당한 수백만 명의 피해자    

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 배상해야 한다.


5] 바탄반도에서의 죽음의 행진으로 인해 죽거나 고통을 받은 수천 명에게  공식적     

으로 사과 배상해야 한다.


6] 그 외의 제네바 협약의 위반한 전범자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사과해야한다 



2. 원한의 남북분단의 근원이 일제 강점 시 일본의 패망으로 이어진 원인 이었다!


일제강점기 이전 사회로 환원 할 수 없었고 해방 후 굴절된 부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일본 패망 후 미 · 소의 점령으로

우리민족의 당파들은 미국의 자본주의체제와 소련의 공산주의체제로 양분되었다.


일제강점시 세계대전이 일어났기 때문에 미 · 소의 개입으로 결국은

분단의 한을 남기게 되었고 이어서 6·25 이념전쟁까지 치르게 되었다.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하지 않았다면 남북분단과 6·25한국전쟁의 불행도 없었을 것이다.


3. 6·25 한국전쟁으로 일본은 재무장 경제회생의 계기가 되었다.


6·25 한국전쟁으로

일본 경찰예비대원들은 미군 교범(FM100-5)을 바탕으로 철저한 미국식 교육을 받았고

1952년 8월부터는 미군측이 제공한 전차와 곡사포 등 화력장비로 훈련을 했었다.


이에 따라 경찰예비대의 4개 '관구대' 모두 옛 일본군 사단보다 포문 수가 2배,

1분간 발사량 이 3배, 기동력은 5배로 각각 늘었으며,

이는 당시 소련군의 저격사단 전력과 동일한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구즈하라 대령은 "미국은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염려했지만

소련의 위협을 앞에 두고 옛 일본군 장교들의 전력화를 통한 급속한 전력증강이

불가결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양국 협력은 오늘날 미-일 안보동맹의 기초가 됐다"고 말했다.


4. 현재까지도 핵심부품 소재 수입으로 만년 무역적자가 심각하게 늘어나고 있다.

 

◆ 한.일 무역적자 현황

 

◆ 한.미 무역흑자 현황

 

년도 수출 수입 무역적자 년도 수출 수입 무역흑자
1990 126.3 185.7 59.4 1990 193.6 169.4 24.2
1991 123.5 211.2 87.7 1991 185.5 188.9 -3.4
1992 115.9 194.5 78.6 1992 180.9 182.8 -1.9
1993 115.6 200.1 84.5 1993 181.3 179.2 2.1
1994 135.2 253.9 118.7 1994 205.5 215.7 -10.2
1995 170.4 326.0 155.6 1995 241.3 304.0 -62.7
1996 157.6 314.4 156.8 1996 216.7 333.0 -116.3
1997 147.7 279.0 131.3 1997 216.2 301.2 -85.0
1998 122.3 168.4 46.1 1998 228.0 204.0 24.0
1999 158.6 241.4 82.8 1999 294.7 249.2 45.5
2000 204.6 318.2 113.6 2000 376.1 292.4 83.7
2001 165.0 266.3 101.3 2001 312.1 223.7 88.4
2002 151.4 298.5 147.1 2002 327.8 230.0 97.8
2003 172.7 363.1 190.4 2003 342.1 248.1 94.0
2004 217.0 461.4 244.4 2004 428.4 287.8 140.6
2005 240.2 484.0 243.8 2005 413.4 305.8 107.6
2006 265.3 519.2 253.9 2006 431.8 336.5 95.3
2007 263.7 562.5 298.8 2007 457.6 372.1 85.5
2008 282.5 609.5 327.0 2008 463.7 383.6 80.1
2009 217.7 494.2 276.5 2009 376.5 290.3 86.2
2010 281.7 642.9 361.2 2010 498.1 404.0 94.1
(단위: 억 달러) (단위: 억 달러)
[산업 자원부 제공] [산업 자원부 제공]

2007년 한해만 해도

대일 무역적자가 289억 달러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며,

역사 이래 단 한 번도 대일 무역 흑자를 내본 적이 없다, 


불어나는 적자 폭을 줄이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일본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처음으로)


침략이 따로 없다!

우리는 지금도 일본에 경제적인 침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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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남북 간에 분쟁이 심화되고 경제가 어려우면[IMF] 일본은 독도분쟁을 일으킨다!


현재까지도 섬나라 침략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독도분쟁을 일삼고 있다.

 

 

위치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 번지 
       경위도 : 동도(동경 131도 52분 10.4초, 북위 37도 14분 26.8초),

       서도(동경 131도 51분 54.6초,  북위 37도 14분 30.6초) 
면적 : 187,554㎡(동도 73,297㎡,    서도 88,740㎡, 부속도 25,517㎡)


독도의 내력은 일찍부터 기록에 오르내린 울릉도와 관련지어 살펴보아야 한다.

본토 유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릉도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된 것은

6세기 초 (512년) 후였다.


<독도 역사 연대표>

512년

(신라 지증왕 13년) 이사부 우산국 정벌 신라영토에 귀속시킴 (삼국사기)

930년

고려태조 13년 고려에 귀속

1401년

공도정책

1425년

우산도로 호칭

1454년

(단종2년)에 완성된 세종실록중 권 148권에서 권 155까지의 8권 8책에 지리지로써 세종실록지리지라고도 하는데 권 153강원도 울진현조에 그 부속도서로써 우산도와 무릉도를 열거하고 이들의 개략적인 위치를 우산, 무릉2도 재현 정동해중 2도 相距不遠 風月淸明卽望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역사기록은 독도와 울릉도의 관계를 뚜렷이 밝힌 세계 최초의 문헌으로 평가되며 세종 14 년(1432년)에 편찬된 신선입도지리지를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머리에 밝히고 있다.

1469년

삼봉도로 호칭

1693년

자산도로 호칭 동래 어부 안용복이 울릉도 근해에서 왜인발견퇴거 안용복이 은기를 거쳐 도일 덕천관백에게 출어금지서계 징구 울릉도 일본어민 퇴각

1697년

3년마다 정기적인 치안 확보

1881년

(고종18년) 울릉도 개척령 반포 (척민정책) 일본어민의 울릉도 근해 출어에 대한 일본정부에게 엄중항의

1900년

10월 27일 (대한제국 광무4년) 관보 제 716호의 칙령 제41호 울릉도, 즉도석도(독도)를 울릉군수가 관할토록 함.

1905년

2월 22일 독도의 일본령 편입결의 도금현 고시 제40호로 독도의 동현편입발표

1905년

독도망루설치 해군통신기지로 이용 광무 10년 3월 5일 울릉도 군수 심흥택 보고서 「매천야록」에 독도 관련기록

1907년

경삼남도 울도군으로 편제

1910년

한국수산지 제1호 제1편에 한국령으로 표기

1914년

경상북도 울도군으로 편제

1946년

1월 29일 SCAPIN 제677호 - 연합군 최고사령관이 항복문서의 시행을 위해 일본정부에 보낸 각서에서 울릉도, 독도, 제주도를 일본의 통치권에서 제외

1948년

6월 30일 미공군 폭격연습중 독도출어중인 어민 30명 희생 한국정부의 항의에 따라 1953. 2,27자 미공군 연습기지에서 제외 1951년 6월 독도 조난어민 위령비 건립

1952년

인접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사 독도를 기점으로 평화선을 선포함

1953년

일본이 미국기를 게양, 조난어민 의령비 제거, 일본영유 표지 설치, 한국 어민 독도근해조업에 대한 항의.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일본에 항의각서 발송 그해 8월 5일 영토비 건립, 해양경비대 파견 협의

1953년

4월 27일 울릉도 주민(33명)으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 창설 (대장 : 홍순칠)

1954년

항로표지(등대)설치. 동년 8월 1일 점화개시 각국에 통보

1956년

4월8일 국립경찰의 경비임무 인수결정

1956년

12월 30일 경비임무 인계인수 1966년 4월 12일 수비대장 홍순칠 공로훈장수여

1980년

최종덕 독도 전입

1981년

헬리콥터 이착륙 시설 설치

1986년

7월8일 동인의 사위 조준기(61. 3. 20 생) 주민등록 전입 (가족 3명) 6개월간 어로작업목적

1991년

11월 17일 김성도(56세) 외 가족 (1명) 전입(서도) 울릉경찰서 독도경비대 32명 근무 (동도)

1993년

레이더 기지 설치

1996년

접안시설공사 착공

1997년

울릉읍 도동에 독도박물관 건립



이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512)년에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했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 울릉도라는 명칭이 정착됨에 따라 그 부속 도서인 독도로 우산이라는 명칭이 이동하게 되었다.

조선 1432년 (세종 14)에 편찬된 지리지 강원도 울진 현조에서도 "우산, 무릉 두 섬이 (울진)현 정동(正東)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동해상에 무릉과 우산의 두 섬이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1531년 (중종 26)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 울릉도 가 현의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을 잇고 있다.


1694년 삼척청사 장한상이 울릉도의 300여리 근처에

울릉도의 3분의 1 크기의 섬을 발견한 기록을 담은 <장한상 울릉도 사적기>를 펴냈다.


이것은 한국 문헌에 나오는 울릉과 우산(독도) 의 지명은 모두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울릉도와 그 부근에 있던 독도를 우리가 17세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생히 입증하는 것이다.


18세기에 나온 정상익'의 <동국지도>에 이르러서는 울릉도와 우산도의 위치와 크기가 정확하게 표시되었으며, 조선 후기의 지도에는  으레 울릉도 옆에 우산도 또는 가산도를 표기하고 있다.


독도는 512년 울릉도와 함께 신라에 귀복되었으며,

고려에서는 행정 구역에 편입시키고 백성을 옮겨 살게 하는 등 울릉도와 독도 경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었다.


조선시대에는 독도를 '우산도', '삼봉도', '가산도', '가지도'등으로 불렀다.

조선은 한때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모든 섬에 공도정책을 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일본 어민들의 출어가 잦아지자,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 받고 일본 어부의 어로 활동을 금지토록 하였다.


* 일본 스스로도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인정한 자료가 줄을 잇는다.

1667년 일본인이 편찬한 <은주시현합기>,

1869년 일본 외무성 고관들이 편찬한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1876년 일본 내무성에서 만든 <태정宮> 결정서,

1876년 일본 해군성이 작성한 <朝鮮東海 岸圖>,

1905년 동경박물관에서 펴낸 <일본전쟁실기>,

1936년 일본육군참모본부에서 나온 <지도구역일람도> 등의 자료 등에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밝혔다.


 

“울릉도·독도는 한국땅" 1800년대 日고문서 발견


강원도 울진군에 속해 있던 독도를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 41조에 의해 독도를 울릉군의 한 부속도서로서 공식적으로 강원도에

편입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이 독도를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5년 앞선 것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사실을 뒤엎을 수 있는 귀중한 발견으로 평가된다.


'독도'라는 이름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경상북도에 편입되었고,

2000년 4월 7일을 기점으로 행정구역상 주소를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1~산37로 정하였다.

 

 독도 문헌

                      

 1531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1900년 독도문서                                              대한제국 정부

 독도와 울릉도는 한국 땅 기록

 

                                   

                   삼국접양지도에 주황색으로 칠하여 정확히 독도가 한국 땅                         일본 독도 강제 편입  

 

 

                                          

                      일본실학자 하야시시헤이 가 1785년 편찬한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이 17세기에 제작한, 

                      삼국접양지도는 한국령 확인                                                    조선왕국전도에도 독도는 한국 땅  

 

                                      

                   

               영국 백과사전에 동해표기 Sea of corea 라고 표시됨          연합국 독도 한국에 반환하는문서[1946년1월

                      

   

  일본 내무성과 공식지도를 만들던 육군참모국이 1877년 제작한 '대일본전도'는 일본 영토 전체를 자세하게 나타낸 반면 독도는 지도에서 제외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허구임을 보여준다.

 


6. 한일 어업 협정


1999년 1월 22일부터 발효된 신 한일어업협정으로,


한국 영토의 일부인 독도를 기선으로 한 EEZ를 확보하지 못하고,

독도가 한국 전관수역에서 배제된 채 중간수역에 포함시킴으로써


이 신 한일어업협정을 파기하고 재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 신 어업협정은 국제법상 영해를 설정하는 협정이 아니라

어업에 관한 협정'이기 때문에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고,


이에 대한 언급은 오히려 독도의 영유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표출하는 결과만 낳는다고 발표하였다


이 협정의 유효 기간은 3년으로, 2002년 1월 22일 효력이 만료되는데,

만료 이후 한일 양국 어느 쪽에서도 협정 파기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효력은 자동 연장된다.

 

         


2005년 3월 1일.  

평화통일 문제 연구소.  대표  박  덕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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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문제 해결방법 [2005년 3월 16일.] 


 


-먼저 일본에게 告한다.


일본은 한국을 진정한 우방으로 생각한다면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된 근본 원인을 알아야하며, 한반도의 비운의 현실을 망각해서도 안 된다.

 

일본은 한반도 역사이래. 현재까지도

계속 이용만하고 침략만을 일삼아 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으며

6·25 한국전쟁으로 천만 이산가족이 부모 · 형제 · 처 · 자식조차 만나볼 수도 없는 현실을 알아야 한다.


일본은 독도문제 교과서외곡 문제로 더 이상 한국의 아픈 상처를 건들이지 말아 주기 바라며,

무역불균형 문제도 상호 균형을 유지하려는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


더 이상 한반도를 이용 침략하려는 전범국 야욕을 버려야한다!

한국 국민들의 수준이 더 이상 이용 침략당하지 않을만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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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に日本に告げます.


日本は韓国を真正な友邦で思ったら

韓半島が南北に分断された根本原因が分からなければならないし,韓半島の非運の現実を忘却してもいけないです.


日本は韓半島歴史にしろと言う舷梯までも

ずっと利用だけして侵略のみを恣行ワッダは事実を忘れてはアンドエムニだ.


今までも南北が代置しているし

6.25朝鮮戦争で千万離散家族が親,兄弟,妻,子さえ会ってみることもできない現実が分からなければならないです.


日本は真正な韓日友好関係をはかって定立しようとすれば,

?ヒョジョがは韓半島の不幸をウィロハルズル分かる雅糧と資材がもっと増進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です.


日本は独島問題教科書歪曲問題でこれ以上韓国の痛い傷を件たちにしなくくださって,

貿易不均衡問題も相互均衡をユジハルリョは姿勢がもっと必要です.


これ以上韓半島を利用チムリャックハルリョは戦犯国野慾を捨てなければならないです!!!.

韓国国民の水準がこれ以上利用,侵略されるのアンウルほどの実力を保有してイッダヌンゴッが分からなければならないです.



1. 한국 시급히 시정해야 할 일.


1] 핵심 부품소재 자체개발을 육성하는 정부지원 대책이 시급하다.


비효율적인 행정도시보다, 첨단 산업단지로 조성하여 중소기업을 지원 육성하자.

핵심 부품소재를 해결하지 않고는 절대로 선진국 대열에 설 수 없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대일무역적자"가 2004년도에만 244억 달러다.

이번에는 핵심 첨단부품소재 육성으로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하여 내수경기를 살리자!


2] 첨단제품 부품소재 의존을 한·일보다는 미국· EU로 다변화해야 한다.


미국은 "한·미무역흑자"가 2004년에도 141억 달러다.

"한 · EU 무역흑자"도 2004년도에 136억 달러다.

[적자 국이 아닌 흑자국이다].


미국은 우리에게 민주주위를 심어주었고,

경제적으로도 우리를 계속 도와주고 지켜주고 있는 국가다.


미국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무역 균형이 더욱 필요하다.

미국은 진정한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나라다.


3] 일본관광 자제[일본 관광지 한국인이 대다수].


일본의 관광지에는 한국인이 넘처나 마치 한국에 관광 온 것 같다.

국민 스스로 자제해야하며, 상품은 비싸서 살수가 없으므로 선물은 한국에 돌아와 사자.


4] 한‘일 간 수출품목 개발 및 무역적자 개선 연구.


우리도 관광지를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제주도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 등을 관광특구로 지정 개발해야 한다.

일본을 적극적으로 연구하여 그들이 선호하는 수출품목들을 선별 해 내야 한다.



5] 한일어업협정을 파기하고 재협상에 임해야 한다.


한일어업협정의 약점을 이용하여

그들은 국제재판을 활용하여 독도 영토를 넘보고 있다.



6] 한일 자유무역[FTA]협정은 시기상조이며 그들에게 더욱 이용만 당할 것이다.


일본은 진정한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국가가 아니다.

자기나라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민족이다.


7] 독도는 우리영토로써 우리국민이 자유롭게 여행 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야 한다.


울륭도에서 정기노선으로 개항하고,

국민들을 보호하는 경비업무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8] 한미 동맹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최소한 향후20연간은 미국의 절대 패권이 확실시된다.  


당면한 북핵문제의 해결,

북한의 인권 개선과 민주화,

북한의 개혁 · 개방,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궁극적으로 평화적 민족통일에 있어서 미국의 절대적 협조가 필요한 형편이다.


또한 한. 미동맹의 약화는 일본으로서는 독도 탈환의 호기가 될 수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 안보와 발전을 굳건히 수호해온 한 · 미동맹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9] 외유내강 실속우선 합리적인 독도정책이 중요하다.


기존의 정부 방침은 외유내유 무시우선이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일본보다 아직까지는 국력이 열세다.

특히 현 정부는 외교력 면에서는 더더욱 열세다.

은인자중하면서 우리도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야 한다.



10] 독도 방위를 경찰이 아닌 국군이 지킬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신속히 단행하자.

 

장기적인 관점에서 레이더기지나 미사일기지를 만들어도 좋고

대한민국 잠수함 기지를 만들어도 좋다.

명목상 이유는 북한방어로 해놓고 말이다.


11] 해외 홍보를 다각적으로 그리고 은밀하게 진행하다.


이것은 일본에게 배워야 할 점이다.

다만 일본은 각국 정부나 기관에 의뢰하여 홍보하였지만


우린 이와 다르게 좀 더 파급효과가 큰 각국 국민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는 홍보를 해야한다.

방법은 영화와 소설, 애니메이션, 게임 등 해외수출용 콘텐츠에 전범국의 역사나 독도를 삽입시키는 것이다.


해외로 수출할 모든 상표에 독도 전경 사진보다는 독도의 지도를 홍보해야 한다.

동해 지도상에 '다께 시마'가 아닌 '독도'로 표시된 지도를 세계에 홍보해야 한다.


12] 독도를 해외유명 해상 관광지로 조성하다.


남해의 제주도와 더불어 한국의 제2 관광지로 급부상시키는 것이 골자다.

모든 한류 컨텐츠를 독도로 집중시키는 것도 좋겠다.


13] 독도에 가면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는 관광지로 육성하자.


국내외 관광객이나 중고등학교 수학여행지로 단골이 될 수 있도록 조성하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 울릉도에 대규모 해상국제공항을 건조해야 한다.


영종도 공항의 1/5 수준만 되어도 좋겠다.

그리고 울릉도 독도의 완전 비관세지역화하고 수중체험관이나 수족관 등 세계최대의

해상해저공원을 계획해 보자.


2005년 3월 16일. 

평화통일 문제 연구소.  대표  박 덕 주.

 

                                                 독도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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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물! 을 외치며 불로 떠나간 후손들이여! [2005년 3월 18일]

 

일본 전범자 후손들이여!

히로시마 나가사기에 한 번 더 가서 보라!

침략자의 최후가 어떤가를 보고 또 보고 반성 자중하라!


수많은 영혼이

물! 물! 물! 을 외치며 불로 떠나간 영혼들의 탄식을 들으라.


경제적인 침략도 더 이상 하지 말라,

만년 한일 무역적자 [2005년 244억 달러]도 이제는 개선하라!

로열티 첨단기술 다 우려먹지 않았는가. 가마우찌 노릇 고만 하라.


일본은 역사이래. 계속 한반도를 이용하고 침략만 할 것인가!


한국국민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반성한다면 한국국민의 아픈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6·25 전쟁까지 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일본은 아는가?


모두가 일본의 침략 때문 이였다!


36년간 일본에 침탈 중 태평양 전쟁 패배로

미 · 소에 예속 세기적인 이념전쟁의 원인이 되었었다.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하지 안했다면,

남북의 분단과 6·25전쟁도 없었을 것이다.

한반도의 깊은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아프게 짓밟으려 하려는가!


전범자의 추악한 역사도 음폐 외곡 미화시켜

지도국으로 또다시 부상하여 군국주의 패권을 다시 노릴 것인가!

독도를 대륙의 전략 요충지로 점령하여 다시 육지로 진출하고 싶은가?


지구촌이 공생한다는 것도

지구촌의 안녕과 평화를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는 것도 망각하고,


오직 자기나라 이익에만 현혹되어,

주변국을 경제적으로 이용하고 영토 침략만을 계속 할 것인가?


동남아 근세 추악한 전범국은 일본이며

다음으로 6·25 남침을 자행 한 김일성 정권이다.


이들의 침략 결과가 과연 자신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가?

일본은 핵'세례를 받았고, 북한은 기아로 허덕이고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일본이나 북한은

계속 침략 야욕을 버리지 못한다면 반듯이 멸망 할 것이다.


이들의 역사를 철저하게 보존하여

후세에 기리 알려 반성하고 또 자성하도록 노력해야한다.


전범자 일본이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진출도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


세계는 일본의 군국주의 부상을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경제적인 장악이나 사무라이 세력들을 철저하게 차단해야한다!


또다시 침략을 한다면,

일본열도의 3개 섬을 3개국으로 분열시켜 영원히 고립 시켜야한다.

 

. 일본의 패망.

 

                     

 ↑ 원자폭탄 / 1945년 8월 8일 6만 피트                        일본 나가사키 원폭 투하 지점 기념비

[출처] 일본 나가사키 원폭 투하 지점

상공에서 B-29 수퍼포트레스 폭격기에서

투하한 원자폭탄으로 발생한 버섯구름.

 

                               

      일본 항복문서                                                            항복 문서 서명 

 

 

 일본 항복문서에 서명

 

1945년 9월 2일 요코하마에 정박 중인 미 전함 미주리호 함상에서 맥아더 사령관(왼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일본의 군 수뇌부.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함으로써 태평양전쟁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조선총독이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모습                                  조선총독부 광장에서 내려지는 일장기

 


2005년 3월 18일  

평화통일 문제 연구소. 대표 박 덕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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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戦犯なの!


広島ナがサギにもう一度行って見ろ!侵略者の最後がどうなのかを見て反省自重しなさい!


経済侵略もこれ以上しなく,韓日貿易赤字244億ドル[2004年]も改善しなさい!


日本は歴史にしろと言うずっと韓半島を利用,侵略のみをした!


韓国民は決して座視しないだろう.

本当に反省したら韓国民の痛い現実を直視しなければならない!


韓半島が南北に分断されて6.25戦争までするようになった根本的な原因を日本は分かるか?


皆が日本の侵略のためだ

韓半島が36年間 日本に侵奪中大東亜戦争をイルキョピェベした後米,ソの占領が原因になった.


日本が韓半島を侵略しなかったら南北の分断と6.25戦争もなかったはずだ.

韓半島の深い傷が舷梯までも癒えるのも前にまた痛く踏み付けようと思っている.


独島を大陸の戦略要衝地に占領して

戦犯の醜い歴史もウムピェ歪曲美化して再びミリタリズムピェグォングックを夢見ている.


これらは地球村がゴングセングハンダヌンゴッを忘却して

地球村のこんにちは(さよなら)と平和のために奉事するとハンダヌンゴッをそっぽを向いている.

ただ自国利益にだけ目が眩んで周辺国を経済的に利用侵略している.


東南アジア近世戦犯国は日本で次に金日成政権だった.

これらの歴史は徹底的にボジョンして後世に這おうぞ知らせて反省して自省するように努力しなければならない.


悪辣だった戦犯日本が世界指導局[安保理常任理事国]で負傷を阻まなければならない.


世界は再び日本のミリタリズム負傷を許容してはいけない.

彼らの経済的なピェグォンやミリタリズム負傷を徹底的に遮断しなければならない!!


再び侵略をしたら日本列島の4ゲソムが4ケ国で分断させて永遠に孤立させなければならない.


05년 3월 18일

平和統一 問題 硏究所.   代表  朴   德  柱.                       (처음으로)